지난 토요일은 그렇게 나쁜 날은 아니었다. 생리가 시작한 지 이틀째였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이런 시기에 짝꿍과 나는 꼭 다툼이 있는 편인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나의 우울한 감정으로 인한 히스테리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우울한 감정이 나의 우울증 때문인지 아니면 PMS 때문인지는 나 조차도 알 수가 없다.
PMS
나는 불행하게도 PMS가 다소 심한 편인데 안타깝지만 PMS가 대체 언제 찾아오는지 알 수도 없다. 나처럼 PMS로 인한 우울한 감정이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이놈은 어떤 사소한 일에도 갑자기 확 화가 난다던지 서운해진다던지 해서 꼭 울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놈이다.
이 날도 느낌이 슬슬 오는 것 같더니 결국 사건은 마트에서 터졌다. 시작은 정말 사소했다. 나는 돼지고기를 사고 싶었고 내가 스스로 자르기가 귀찮아 잘라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중간에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결국 나는 덩이 고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뒤늦게 따라온 짝꿍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판매원은 빨리 가라는 듯이 고기를 내 앞으로 들이밀었고 나는 순간 확 눈물이 차오르고 우울한 감정이 훅 떠올라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와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생각해보니 그냥 고기 망치로 두들기면 되는 문제였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의 그것과는 다소 달랐던 것이 울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건 그(판매원)의 잘못이 아니다. 일단 일차적으로 나는 아직도 일상 대화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은 것뿐이다. 고로 이 감정의 원인은 판매원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우울했던 감정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석은 분석이고 감정은 또 다른 문제라 집으로 도착한 이후에도 이 우울한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나는 혼자서 차 속에 남아 남은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런 무드 스윙은 누군가 달래주기도 좀 뭣하기도 하고..) 그러고 친구가 집으로 방문해 감정은 금방 추스를 수 있었기에 그렇게 그냥 끝났다고 생각했다.
님펜부르크 성에서의 다툼
그리고 일요일, 우리는 님펜부르크 성에 놀러가기로 했다. 거리가 좀 되었지만 자전거를 타니 그런대로 갈 만했다.
자전거를 입구에 세워둔 뒤 성 안을 걸어 다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그 중간에 짝꿍이 내가 싫어하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이전에도 내가 계속해서 싫어하는 말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던 말인데 불현듯 다시 그런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순간 나는 기분이 상했고 그 감정이 쉬이 사그라들지 않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도 금방 괜찮아지는지라 아 이거 생리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한 기분 상함은 또다시 우울한 마음 상태로 내 기분을 다운시켰고 그러한 감정은 사실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니 아무리 진정을 하려고 해도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다. 결국 중간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고 좋지 않은 기분으로 성을 빠져나왔다.
다시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돌아가는 길에 저번에 갔던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그 이전에 갔던 또 다른 카페를 가고 싶었으나 기분이 꽁해있는 마당에 굳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가자는 데로 따라갔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 카페를 지나쳤는지는 몰라도 거기를 찾을 수가 없었고 거기서 약간 성질이 난 우리는 그냥 집에 갈까 하던 와중에 일단 가다가 카페가 보이면 거기서 뭔가를 마시기로 했다. 운이 좋게 곧바로 다른 카페를 찾을 수 있었고 밖에 있는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테라스에서 주문을 받던 여자분이 안에서 케이크를 고르라길래 (보통 독일은 케이크 메뉴가 다 쓰여있지 않고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주문하는 시스템.) 들어가서 그 안에 있던 남자분에게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주문을 받다가 내가 테라스에 앉아있다 하니 너 무슨 소리 하는 거니?라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알고 보니 이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본인이 케이크를 보고 다시 테라스에 있는 직원에게 가서 재주문을 하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나는 생리+성에서의 화남으로 인해 이미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케이크 주문마저 쿵짝이 맞지 않으니 기분이 더 나빠졌고 알겠다고 하고 나와 결국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짝꿍은 계속 정말 아무것도 안 먹을 거냐며 여러 번 묻는 마당에 내가 싫다는데 왜 나를 굳이 뭘 주문하게 하려는 거지? 내가 싫다는데 왜 조종하려는 거야?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생각은 나를 더 기분 나쁘게 했다. (나는 누군가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래라저래라 충고 내지 조언하는 걸 상당히 싫어한다.) 짝꿍은 이제 거기서 대체 너 왜 이래라는 식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또 작은 다툼이 일었다.
그리고는 집에 가는 중에 자꾸 짝꿍이 내가 너무 늦게 달린다고 몇 번이고 얘기를 하는 통에 '이젠 자전거도 내 맘대로 못 타나?'라는 생각에 일부러 더 느리게 달렸고 어느 순간 나는 짝꿍을 놓쳐 그냥 그대로 직진을 했는데 한참 뒤에 짝꿍이 화를 내며 왜 거기로 가냐라고 화를 냈다.
나는 이전에 계속 있었던 작은 다툼들에 영향을 받은 데다 기분이 상한 나머지 그대로 짝꿍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달렸고 혼자 집으로 향하면서 짝꿍이 그냥 그대로 집에 갔다는 것과 아까 카페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우울한 마음이 들어 달리면서 좀 울다 보니 그 덕에 집에 다소 늦게 도착했다.
짝꿍은 짝꿍대로 내가 계속 하루 종일 기분 나빠했던 것과 자전거 사건 등에 빈정이 상해 있던 때였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곧바로 침대로, 짝꿍은 티브이로 시선을 옮겼다.
다툼의 원인
다른 커플들도 다 그렇겠지만 다툼의 시작은 정말 사소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요소 (우리의 경우엔 일로 인한 스트레스와 나의 무드 스윙)들 때문에 작은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내가 가진 나쁜 버릇 중 하나인 회피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다툼이 생기면 그냥 입을 닫는 버릇이 있다.
이게 늘 그러는 것은 아닌데 자꾸 같은 내용으로 다툼이 생기게 되면 상대가 내가 같은 이유로 화가 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어차피 쟨 이해도 못하는 데다 말하는 것도 기운 빠지는데 그렇게 애써서 말해봤자 뭐가 달라져'라는 생각에 그냥 입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할 말이 없어서 혹은 하기 싫어서가 아닌 말을 꺼냈을 때의 엄청난 에너지 소모,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여러 가지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지 못함, 언급했듯이 있는 힘없는 힘 쥐어짜서 말해봤자 해결이 안 됨 혹은 '내가 이거 저번에 이미 얘기했던 건데'라고 말했을 시 뻔히 돌아오게 되는'언제? 그런 적 없는데?'라는 방어적인 대답 등등의 이유인 것이다.
게다가 저 날은 생리 중이라 예민하고 우울했던 데다 이틀 연속으로 뭔가 나를 꿍하게 만들 만한 일이 벌어짐과 동시에 몇 년을 살았는데도 생활 대화에 문제가 생기는 나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걸 몰라주는 짝꿍에 대한 서운함 등등등이 얽히고설켜서 마치 잔뜩 꼬여버린 이어폰 줄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이러한 감정의 엉킴은 꼭 크고 작은 다툼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국제커플이라 그런가, 이제 여기에 언어 문제가 엮인다.
우리의 주 언어는 독일어이지만 완전 독일어로 바꾼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이전에는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서 사용했었다. 하지만 나는 독일어도 영어도 완벽하지가 않으므로 가끔 나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러면 짝꿍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듣는다 해도 내용을 오해하게 된다.
평소에는 나의 독일어가 꽤나 완벽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이지만, 정말 문제가 생겨서 복잡한 감정에 대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표현해야 할 때 나는 표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러면 그는 늘 '내 독일어가 별로'라 알아듣기가 힘들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속으로 '그래 나는 외국인이니까. 근데 너는 왜 나랑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거야? 왜 나만 너네 말하려고 아등바등해야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면서도 나의 독일어에 자책을 하게 되며 우울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내가 이곳에 살면서 한국 사람이 아닌 이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 산다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는 혼자 툴툴거리며 다툼을 만들게 된다.
물론 보다 보면 생각보다 대화가 잘 안되는데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분들도 많다. 말로 하는 언어가 다는 아니라지만 그들도 나처럼 이런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텐데 그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사실 지금도 궁금하다.. 근데 직접 묻는다면 무례한 질문이 되기에 굳이 묻진 않는다.)
이따금씩은 우리가 만난 지 몇 년 째인데, 매번 이렇게 내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나..... 한두 번쯤은 그냥 알아줄 순 없나? 꼭 일을 만들고 나한테 상처를 주고 다툼이 생겨야 개선이 되고 그런 건가? 그런 눈치는 정녕 한국인이 아닌 이상 생길 수가 없는 것인가?라는 마음이 뒤얽힌 상태가 된다. 그러면서 우울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하지만 상대편에서는 내가 왜 입을 닫는지 그저 답답할 뿐이고 이러다 보니 싸움이 길어지는 것이다.
이런 우울한 상태에서는 대체 우리의 다툼을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사실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글로 주저리주저리 적어보면 뭔가 해결 방안이 생길까?라는 생각에 문득 적어본다.
사실 짝꿍이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공대 남자도 아닌데 인풋이 늘 필요하다. 문제가 있으면 말할 것, 그리고 해결방안을 찾을 것. 그뿐이다.
근데 기계는 몇 번 투입해주면 자기 혼자서 답을 찾기라도 하는데 이 남자는 내가 매번 인풋도 넣고 해결방안도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고장 난 알고리즘 기계라는 것이다.
'특정한 일'에 대해서는 인사이트를 잘 주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일을 구하고 싶다 라면 번호까지 매겨가며 이렇게 저렇게 잘 알려주는 편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정답이 딱딱 나오지 않는 문제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짝꿍 욕 할 것도 없는 게 나도 똑같이 참 힘든 타입이다. 내가 기분이 우울해지며 다운될 때는 사실 이유가 없다. 물론 일종의 촉매가 있긴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라면 아무래도 나의 내면 아이겠지만.. 나는 아직 나의 내면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내면 아이에 대한 글: 내면 아이가 뭐길래)
상담사 말로는 내가 뭔가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라고 그랬는데 머리로는 아닌데?라고 하지만 마음속의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아이콘택트 같은 프로에 나갔는데 상대를 기다린다 해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 걸어 잠그고 난 널 기다리고 있어 라며 혼자 원맨쇼 하는 느낌) 그러다 보니 엄한 주변만 때려잡는다는 건데..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심술의 형태로 자꾸 누군가를 찌르게 되는 것이다. 그 희생자는 안타깝게도 주로 나의 짝꿍이 된다.
내 짝꿍도 부처는 아닌지라 가끔은 참아주기도 하지만 한 번씩은 터져 다툼이 생기게 된다. 반대로 짝꿍이 심술 내서 다툼을 만들 때도 있고.. 하여간 똑같은 것들끼리 만났다. 하하
결론적으론 다시 잘 풀렸다. 시작은 정말 별 것도 아닌 문제였던지라 다시 참을 인 자를 백 번은 새기고 서로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서로 잘못을 다 따지기엔 일단 너무 사소했던 문제고, 나의 PMS도 있었던 지라 그냥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다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 일기로 인해 다음에 같은 상황이 생겼을 때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 - ) 한국엄마 독일아빠 > 한독커플 국제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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