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할 적부터 이런저런 후기를 찾아보려 했지만 슈바빙 쪽 말고는 출산후기를 찾을 수가 없어서 혹시 이 병원을 고려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아이를 낳은 뮌헨 Klinikum Harlaching에서의 출산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양수가 터지다
나는 당시 40주가 지나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상태였는데 결국 예상치 못하게 양수가 먼저 터지고 말았다.
솔직히 38주 정도이면 어련히 알아서 진통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40주가 되자 나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고 내 헤바메는 중순부터 휴가를 가기로 예정이 되어있던 터라 첫 10일은 아무래도 내 몸 상태를 잘 아는 기존 헤바메에게서 받고 싶었지만 내가 예정일을 넘기게 되면서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시엄마께서 예정일 2주 후에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시기로 했는데 아이가 나오지 않았으니 최악의 경우 같이 병원에 가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더욱더 조바심이 들었다.
예정일날 출산병원에서는 일단 일주일 정도 기다려 보고 그때도 자연진통이 오지 않으면 유도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했다.
유도분만은 아무래도 인위적으로 아이를 내려오게 하는 것이라 아이에게도 스트레스일거라 생각했고 진통의 정도가 더 심하다고 들어 제왕엔딩을 맞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어떻게든 그전에 자연진통으로 아이를 낳고 싶었기에 그래서 어느 정도 내 몸을 혹사시켜 보기로 했다.
일단 하루에 만오천보 정도 씩 걸었고 아침저녁으로 10분씩 타이머를 재 가며 짐볼을 몇 시간씩 탔는데 앞뒤로도 타고 양옆으로도 타고 8자로도 타고 아주 난리법석을 떨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 봐 소심하게 했던 바운스도 이젠 정말 때가 왔다는 마음으로 강도를 더 세게 해서 대략 사나흘 정도를 그렇게 열심히 탔다.
여기에 젖꼭지도 열심히 꼬집꼬집 해보며 자궁수축을 유발하려고 했지만 소식은 계속 없었다.
그러고 양수가 터진 대망의 그 날 저녁, 정확하게는 전 날 저녁에 평소처럼 하던 성공적인 모유수유를 위한 젖꼭지 올리브오일 팩도 하고 기저부 마사지도 했는데 기저부 마사지를 끝내고 나니 다른 쪽 가슴보다 아주 살짝 더 발달이 된 왼쪽 가슴의 유두 쪽에서 하얀 작은 액체방울을 보았고 이게 모유인가 싶었지만 별 의미는 두지 않았었다.
그렇게 대락 12일 0시 쯤에 잠자리에 들었고 그 직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는데 뒤처리를 다 하고 일어서는 순간 약간의 물방울이 후드득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나는 이게 뭔가 하고 당황했지만 양이 너무 적었기에 양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임신 후기에 요실금이 오는 경우가 흔한지라 요실금이 이제 오나 싶어 일단은 팬티라이너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잠을 자다 대략 새벽 2시 반 경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양의 물이 흐르는 느낌을 받고 순간 어어..! 하며 화장실로 후다닥 달려가 보니 팬티라이너가 그새 흠뻑 젖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이걸 양수가 샜다고 봐야 하나 오줌이라고 봐야 하나 분간할 수가 없어서 일단 조금 더 두꺼운 생리대를 차고 잠을 좀 잘까 하다가 전화나 해보자 하고 분만실에 전화를 걸었다.
사실 분만실에서 별것도 아닌걸로 전화를 했다며 잔소리를 들을까 싶었는데 분만실 측에서는 의외로 양수가 샌 것 같으니 지금 바로 병원에 오라고 했고 나와 남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간단한 짐을 챙겨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유도분만 계획
병원에 도착을 한 뒤 먼저 샌 액체가 양수가 맞는지 리트머스 시험지에 검사를 했고 그 결과 양수가 맞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일단 검사대에 누운 뒤 예정일날 했던 것처럼 CTG와 혈압검사를 했고 여기에 추가로 피검사까지 한 뒤 귀가조치되었다.
물론 그냥 집에 가라고 한 것은 아니고 일단 양수가 터졌으니 양수가 터진 시점으로부터 18시간 내에 자연진통이 오지 않으면 감염위험 때문에 유도분만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안내를 받고 유도분만에는 어떤 약물이 쓰일 수 있는지 등 간략한 설명을 들은 뒤 헤바메는 체온이 오르면 감염신호가 될 수 있다며 4시간마다 꼭 체온을 재라고 하면서 우리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물론 원하면 그대로 입원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마음 편한 집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병원에서 대략 2시간 정도 보낸 듯하다.
양수가 터지고 나면 대략 12시간 뒤에 다시 병원에 가서 똑같은 검사를 하게 되는데 이 안에 자연진통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다시 병원에 재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체온에 변화가 있었는지 묻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검사를 했고 다시 6시간 뒤에 병원에 오되 그때는 유도분만을 위한 입원을 하는 것으로 하고 귀가를 시켰다.
나는 그 안에 제발 자연진통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열심히 짐볼을 돌렸으나 이런 엄마 맘도 모른 채 뱃속의 아기는 열심히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국 가진통도 없이 입원을 하게 되었고 진통실에서 짐을 푼 뒤 다시 CTG를 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궁수축은 대략 15분 간격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나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도 말을 굳이 안 해주길래 남편이 구글링을 통해 알아냈다.)
어쨌거나 뭔가 진행이 되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안티비오티쿰을 손목에 맞고 다음날 유도분만 약을 먹는 것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잠을 청했다.
참고로 유도분만은 나처럼 약을 먹는 경우가 있고 겔 형태의 약물을 질을 통해서 주입하는 방법도 있는데 두 번째 방법의 경우 질을 통한 부인과 수술 경험이 있다면 피해야 하므로 자궁내막증 수술 이력이 있는 나는 이 방법은 피해야 했다.
유도분만 약을 복용하는 경우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알약을 복용하게 되며 진통이 언제 오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진통이 오기까지는 대략 하루에서 사흘 정도가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모른 채 시간이 그래도 꽤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남편과 함꼐 진통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남편을 12일 23시 즈음에 집으로 보내고 나는 홀로 잠을 청했다.
진통이 찾아오다
하지만 유도는 커녕 잠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대략 0시 30분경 갑작스레 진통이 나에게 찾아왔다.
생각해 보니 전날 유도 준비를 하면서 망사팬티에 오로패드를 입은 상태에서 잠을 청했는데 마지막 볼일을 보고 난 뒤 양수에 섞여 묘하게 분홍색의 핏자국인지 뭔지 싶은 것을 보았을 때 진통이 곧 오겠다며 예상을 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나름 참을만하기도 했고 나는 가진통조차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어서 긴가민가 했지만 자세를 바꾸어도 아픈 것이 사라지지 않으면 진진통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자세를 요리조리 바꿔보았는데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이건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내가 그동안 보았던 모든 출산 관련 영상들을 최대한 기억해내려고 하면서 내가 아는 모든 감통자세를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위기가 오게 되는데 그건 바로 사물들의 높이다.
나는 160 센티미터 아래의 키를 가진 작은 체구를 가졌고 독일 여성들은 대체로 체구가 크다. 그래서 구비되어 있는 짐볼의 크기도 컸고 내가 편한 감통자세라고 생각했던 의자 끌어안기는 진통실에 구비되어 있는 의자가 팔걸이가 있는 상태여서 시도조차 해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대형병원들은 진통실과 분만실 투어를 해보지 못하고 등록을 하게 되는지라 생각지 못했던 점이었다. 둘째는 꼭 진통실과 분만실 투어가 되는 곳으로 골라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일단 시설을 원망하기엔 내가 가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고 그 안에 최대한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내가 편한 자세를 찾아야 했다. 일단은 짐볼을 끌어안고 하체를 양옆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자세가 그나마 나아 그 자세를 쭉 고수했는데 중간중간 내가 가져온 땅콩볼도 활용을 했지만 역시 최고는 짐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땅콩볼은 무통주사를 맞을 때 위력을 발하는 기구이지 않을까 싶다.
헤바메를 불러야 하나 하다가 일단 초산은 분만 시간이 오래 걸리니 내 선에서 최대한 버텨보고 못 견디겠으면 헤바메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두시간 정도를 버텨 새벽 2시 반 경 참을만한 생리통 정도에서 말도 못 하게 아픈 생리통 정도로 고통의 정도가 심해졌을 때 헤바메를 불렀고 내진해 본 결과 이미 5센티 정도가 열려있었다.
헤바메는 원하면 진통제를 놔줄 수 있다며 무통주사와 함께 다른 진통제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고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도 머리를 굴려 무통주사를 이때 맞지 못하면 못 맞고 낳겠구나 싶어 무통주사를 달라고 했다. (사실 그전에 진통이 좀 가셨을 때 가방을 허겁지겁 열어 마취 동의서를 제일 위에 꺼내놓았다.)
헤바메는 다른 진통제는 써보지 않을 참이냐며 나를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그저 무통만을 외쳤고 헤바메는 알았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1시간 이상이 지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취과에 연락을 해서 무통 준비를 하고 분만실까지 오기가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왜 이리 안 올까 일부러 무통 안 주려고 시간을 끄는 건가 생각이 들면서 속으로 온갖 욕이 나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와중 갑자기 진통이 생리통은 비교도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심해지며 호흡법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파도가 몰아쳤고 진통이 올때마다 질 쪽에서 뭔가가 엄청난 힘으로 아래를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는 정말 힘을 주려고 한 건 아닌데도 저절로 힘을 주게 되는 상황이 동반되고 입으로 악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정신을 분산할데가 없어 소리라도 내게 되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때 힘을 주면 그나마 나았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이 단계에서 자궁문이 거의 열리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기 힘든 통증이 온 시점부터 살짝살짝 힘주기를 했으면 아기를 좀 더 빨리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거의 막바지 즈음에는 호흡법조차 제대로 하기가 힘들어 복식보다는 흉곽호흡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호흡법에 비벼보자면 라마즈 호흡법이었을까? 아무튼 그간 연습했던 이미지트레이닝은 1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레몬향 아로마 오일을 챙겨갔지만 이런 진통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 진통이 참을만할 때 했던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나는 인간 메트로놈이다 하고 잠시 생각했던 것과 진통 막바지에는 최대한 숨에 집중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란 것의 전부였다. 그리고 혹시 몰라 챙겨간 작은 빗을 있는 대로 꽉 움켜잡아 그 고통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도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용변을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왔고 이건 질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말 항문을 통한 느낌이어서 화장실을 최대한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막상 진통이 잠시 가셨을때는 너무 힘들어 잠들다가 다시 진통의 파도에 휩쓸리다를 반복하다 어느 휴식기에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화장실로 달려가 내 인생 최고로 짧은 시간 안에 용변을 보았는데 그때 상당히 많은 피를 보았다. 대략 생리 1일 차인데 양이 많은 주간에 보이는 1일 차 정도의 양이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게 자연관장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죽을 듯 말 듯 버티다가 드디어 헤바메가 진통실로 들어왔고 무통주사가 준비되었으니 진통이 가셨을 때 내 발로 걸어서 분만실로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순간 짧은 좌절감을 느끼며 이 엄청난 진통의 파도와 어떻게든 분만실로 가야 한다는 의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마침내 겨우 분만실로 도달했다.
헤바메는 내 옷을 순식간에 벗겨 드라마에서나 보던 등이 뚫린 가운을 입혔고 무통주사는 앉아야 맞을 수 있는 주사라며 진통이 가셨을 때 앉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야만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체감 상 진통이 1-2분 정도의 간격으로 오고 있었고 진통이 왔을 땐 무조건 바닥에 엎드려야 했으므로 유지가 불가능한 자세였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 넘어 산이었다.
그때는 옛날 사극에서 왜 아이를 낳을 때 그렇게 입에 뭔가를 물고 낳는지 이해가 백 프로 될 정도로 뭐라도 세게 움켜잡아야 했는데 내가 투어 했던 다른 병원에서는 천장에 천이 매달려 있었지만 이 병원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입고 있는 옷을 입으로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도를 하고 실패를 반복하고 있을 때 갑자기 헤바메가 뭔가 밑으로 힘을 줘야 하냐며 묻더니 내진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기가 다 내려왔다며 지금 힘주기를 해야 하니 무통주사는 맞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발가벗겨져 침대 위에 눕혀졌다. 당시 나는 무통주사를 위해 이렇게까지 버텼는데 못 맞는다고 하니 말 그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헤바메는 남편을 호출하겠다 했고 곧이어 남편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 왈 이때가 새벽 3시 52 분이었다고 한다. 당시가 도로에 차가 거의 없는 새벽이었고 집과 병원이 가까워서 망정이지 대낮이거나 거리가 꽤 있는 곳이었으면 남편은 제때 오지 못 했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하니 분만실 침대에 누워서 내 손으로 양 허벅지를 움켜쥐고 숨을 짧게 들이쉰 뒤 동영상을 보고 연습한 대로 10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헤바메의 신호에 맞춰 될 때까지 미친 듯이 숨을 참고 밀었다. 내가 미친 듯이 밀 때 헤바메는 최대한 내 질을 벌려 아기가 빨리 나올 수 있게 했다.
간단할 것 같았던 힘주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일단 자세를 올바르게 잡고 올바르게 힘을 주는 것이 의외로 난관이었다. 이미 무통 없이 휘몰아치는 진통을 견뎌내느라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다리를 제대로 확 벌려서 잡고 힘을 줘야 하는데 너무 아픈 나머지 다리가 계속 오므라들려고 해서 그걸 조절하느라 힘들었고 또 얼굴에 힘을 주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여기에 힘줄 때 턱을 아래로 해야 하는데 계속 위로 올라가기도 해서 헤바메가 계속 다리를 벌려라, 얼굴에 힘주지 마라, 턱을 내려라 하고 지시를 해줘야 했다.
그렇게 죽어라 밀어내다 보니 어느덧 머리가 질 입구에 걸리는 순간이 왔고 질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도 함께 찾아왔다. 나는 이 고통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미친 듯이 밀었고 중간에 다른 헤바메가 아기 머리를 만져보겠냐며 물어보았지만 나는 아기 머리를 만져볼 정신이 없던지라 본의 아니게 그 질문을 무시한 채 아래로 죽어라 힘만 주었다.
그 사이에 남편이 분만실로 도착했고 헤바메가 남편을 들여보낼까 아님 밖에서 기다리게 할까 라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진통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는 남편이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고 그렇게 남편은 대략 30분가량을 밖에서 기다렸다.
근데 낳고 보니 구석에 서 있으면 어차피 내 질 쪽을 보지 못할 것 같아 둘째 때는 들여보낼 참이다.(어차피 자연진통이 오면 같이 들어와야 할 지도?)
그렇게 남편을 내보내고 나는 다시 최대한 질에 힘을 주면서 턱 방향도 신경 써가며 이젠 제발 나와라!! 하고 내적비명을 지르던 중 뭔가 질 쪽에서 엄청 미끌거리는 대왕 굴 같은 것이 빠져나오는가 싶더니 곧이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득 헤바메에게서 힘 빼라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지만 상관없었다. 아기는 주수를 지나서 낳아서 그런가 양수를 많이 마신 것 같다는 헤바메의 말과 함께 이런저런 조치가 취해지는 듯싶더니 몇 초 뒤 좀 더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인 진통을 느낀 시간부터 대락 4시간 정도 걸려 새벽 4시 35분 초고속으로 건강한 딸아이를 출산했다.
드디어 끝났다 하고 눈도 못 뜨고 기진맥진한 와중에 헤마베가 탯줄을 잘라보겠냐며 나에게 왔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생전 처음 본 탯줄은 불투명한 색에(모유 전유 색?이랄까 물탄 우유색 느낌이다.) 그 가운데에 어두운 색의 뭔가가 비쳐 보였고 자를 때 사각 소리가 났으며 촉감은 겉은 젤리같이 말랑말랑 하지만 안은 꼬들꼬들하게 익은 문어다리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탯줄을 자를 때 아프진 않았는데 단순 혈관조직인 탯줄은 신경이 없고 아기가 태어난 순간 기능을 멈췄기 때문에 잘라도 출혈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체감을 하니 꽤나 신기했다.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물 탄 우유색 같은 겉 부분은 Wharton‘s Jelly 워튼젤리 라고 하는 부분으로 탯줄을 처음으로 연구했던 영국의 해부학자 토마스 워튼의 이름을 따서 워튼젤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자를 때 단단했던 부분은 1개의 제대정맥과 2개의 제대동맥으로 이루어진 제대혈관인데 특히 동맥은 근육층이 있어서 자를 때 더 질기고 단단하게 느껴질 수 있어 탯줄을 자를 때는 특수한 가위를 사용한다고 한다.
탯줄을 자른 뒤 아기는 잠시 내 가슴팍에 눕혀졌다가 캥거루 케어를 위해 남편에게 안겨졌고 나는 다시 한번 힘주어 태반을 꺼낸 뒤 곧이어 회음부 부분을 꿰매는 처치가 이어졌다. 나는 회음부 마사지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찢어진 걸 보니 이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회음부는 찢어지지 않았지만 Schamlippe 음순 부분이 찢어져서 그곳을 꿰맨 것이었다. 내 생각엔 아마도 소음순이 찢어진 게 아닌가 싶다. 꿰매는 과정은 진통 스프레이를 뿌리고 했기 때문에 간혹 마취가 덜 된 부분이 있을 때 말고는 그렇게 아프진 않았고 실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느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근데 의사가 Muttermund 자궁경부 쪽도 찢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Oberarzt를 데려오더니 그 사람이 내 회음부를 이리저리 들춰볼 땐 정말이지 너무 아팠다.
아기는 남편이 캥거루케어를 끝낸 뒤에 저울에서 무게가 재어졌고 헤바메가 사진도 하나 찍어주셨다.
그다음 모유수유를 위해 다시 내 옆으로 눕혀졌는데 태어난 지 몇 분 되지 않았는데도 내 젖을 빠는 것을 보며 너무 신기했었다.
그리고 아기가 젖을 빨자 내 몸뚱이는 옥시토신 호르몬을 미친 듯이 분비하기 시작했고 강렬한 훗배앓이도 같이 시작되었다. 훗배앓이는 진통에 버금갈 정도로 그 고통이 심해서 나는 끙끙거리며 참다가 진통제를 놔줄 수 있겠냐 물었고 곧이어 이부프로펜 600짜리 알약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 약을 먹을 정도로 아픈 훗배앓이는 대략 이틀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잠시 아기와 시간을 보내다 침대를 옮겨 탄 뒤 입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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