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본 일이 잘 없었으니 운이 좋았다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은 마음을 참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장례식에 참석할 일이 생겼다.
분명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런 소식은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먼 친척의 일이었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친구 아버지의 소식 등 어쨌거나 나와 감정적인 연대가 적거나 없었던 사람들의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우리 옆집에 살던 노부부 중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좀 불편해지시고 심장에 문제가 있어 아주 건강하던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종종 마주치면 대화는 하는 그 정도의 사이였다. 할머니는 시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분이셨는데 일을 하시다 보니 내가 여기 사는 동안에도 손에 꼽을 만큼 거의 뵌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편이 외출을 하다 정문 앞의 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인사성 밖은 남편은 세상 발랄하게 잘 지내시냐 너무 오랜만에 뵙는다 하며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아까 전 남편이 갑작스레 갔다며 지금 친지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모르나 독일에서는 일단 구급차를 부른 뒤, Amtarzt라고 하는 의사 공무원? 에게 전화를 걸면 사망 추정시각 4시간 이후에 그분이 시간이 날 때 방문을 한 뒤 Totenschein이라고 부르는 사망진단서를 발행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유가족은 그 사망 진단서를 가지고 Bestatter 장의사에게 연락을 한 뒤 장례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작은 시골마을의 경우 금방 된다고 하던데 뮌헨은 큰 도시라 일이 많은지 사망 추정시각인 오전부터 시신 운구까지 대략 8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 사이에 할머님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계신 집안에 들어가기가 심적으로 어려우셔서 계속 밖에 앉아 계시거나 다른 곳에 계셨다.
시간이 한참 흘러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 즈음 할아버지는 그렇게 떠나가셨다. 그리고는 며칠 뒤 정문 앞 게시판에는 옆집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알리는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돌아가신 날이 바로 기점이 되어 3일간의 장례를 치르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사망선고 이후 몇 주정도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 기간 동안 가족은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 )
옆집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독일어로는 Krematorium이라 부르는 화장터 옆 작은 예배당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기 전 가방이 회색이었던 나의 복장이 TPO에 맞는지 고민했는데 민망하게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와 남편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흰색 운동화도 신으시고, 보라색 와이셔츠에, 갈색 정장, 가죽재킷 등 상당히 평범한 옷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망인마저도 채도는 낮았지만 등산복 같은 복장으로 등장을 하셔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기다림 끝에 장례식을 진행해 주실 목사님이 오시자 할머님께서 장례식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으로 Ave Maria를 트셨다. 그리고는 친지들이 흰 장미를 한 송이 씩 고인의 유골함 앞에 두었다.
그다음 목사님께서 쇠사줄이 달린 연기가 피어나는 무언가를 휙휙 돌리시면서 중얼중얼하시더니 상당히 긴 노래를 하셨었다. 가톨릭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불교에서 불경을 외듯이 가톨릭도 그들만의 기도문이었지 않나 싶다.
그러고 나서 한 명씩 앞으로 나가더니 성수로 추정되는 물에 장미꽃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담근 뒤 고인의 유골함 앞에서 휙휙 젓고난 뒤 성호를 긋는 행동을 했는데 가톨릭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식으로 인사라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리고는 따님 혹은 친척으로 추정되는 분이 독일어로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는데 고인을 잘 모르는 나도 참 슬펐다.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또다시 새로운 음악이 들렸는데 Andrea Bocelli의 Time to say good bye였다. 이 노래에 대해서 단지 좋은 노래라고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장례식에서 듣고 나니 이제는 참 슬픈 노래가 되었다.
마지막에 장례식장을 나오며 20유로가량을 부조금으로 냈는데 얼마 정도가 적당한가 고민하다 다른 이웃들은 5유로, 10유로 정도씩 내셔서 남편하고 나 두 사람 20유로를 내자고 판단, 그렇게 내고 나왔다. (아마 가까운 사이나 가족의 경우 부조금을 더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할머님이 본인께서 운영하시는 카페에서 다과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귀가를 했다.
다른 장례식보다 이 장례식이 나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이 미망인이 독일인이 아니셨기 때문이다. 조금 어눌한 독일어를 구사하셨던 걸로 보아 어려서 독일에 이민 온 2세도 아니신 것 같았다. 자녀분들로 추정되는 분들은 상당히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셨지만 원어민 독일어라기보다는 외국인 억양이 묻어났기에 어린 시절 이 할머님과 함께 독일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이 할머님은 일상 독일어를 구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셨으나 전체적인 장례 준비 과정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장례식 때는 계속해서 따님이나 다른 지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고 나도 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지인에게서 들었는데 아무리 현지어에 유창한 사람일지라도 큰일이 갑자기 생겼을 땐 정신적 충격 때문에 언어가 갑자기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스트레스받는 날에는 독일어가 눈에 띄게 어눌해지므로 그 말에 굉장히 공감이 갔다.
그래서 이 장례식은 나에게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장례식 이후 남편에게 내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이제 이 할머님은 장례식 이후에도 고인이 되신 부군이 남기신 재산 정리와 현재 지내고 있는 아파트 처분, 갖고 계시던 차량 처분 등을 이제 혼자서 도맡아야 하고 돌아가신 분과 지내시던 곳에서 당분간은 혼자 지내셔야 할 텐데 그 마음이 어떨까 차마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또한 운영하고 있는 카페가 있으니 생계를 위해서 카페를 계속 닫고 있을 수도 없고 말이다.
물론 우리가 도울 일이 있다면 연락을 하라고는 했지만 과연 그 할머님께서 실제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실지 혹은 요청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저 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시길 바랄 뿐이다.
🛫 추천글 🛬
✅ 독일에서 지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차 | 한국과 독일사이
✅ 해외 생활 중 유난히 한국이 그리울 때 | 한국과 독일사이
✅ 뮌헨 주부 독일 일상: 실버피쉬 퇴치, 브런치 카페, 티라미수
✅ 도전을 좋아하지만 망설이다 포기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기
': - ) 함께하는 독일생활 > 독일사람 독일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통의 독일식 차가운 저녁식사 Abendbrot | Aufstrich 추천 | 한국과 독일사이 (1) | 2024.12.20 |
---|---|
2024 독일 크리스마스 캘린더, 아드벤츠 칼렌다 | 한국과 독일사이 (1) | 2024.11.28 |
독일의 결혼식 문화 | 결혼 선물, 답례품, 하객 패션 | 한국과 독일사이 (0) | 2024.04.09 |
입 짧은 한국인이 독일 식당에서 메뉴 고르는 법 feat. 독일 시댁 | 국제 커플, 한독 부부 | 한국과 독일사이 (0) | 2024.04.08 |
독일에서 부활절을 보내는 방법 2편 | 독일 소시지 브라트부어스트 | 한국과 독일사이 (0) | 2024.04.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