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 ) 함께하는 독일생활/하루하루 독일일상

완벽주의자라 시작이 무서운 사람 | 한국과 독일사이

by nDok 앤독 2024. 8. 1.
반응형

나는 완벽주의자라 무엇이든지 시작을 하는 게 참 무서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나도 한번 물꼬가 트이니 나름 거침없이 내 할 말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불건강한 완벽주의자

 

불건강한 완벽주의자, 딱 바로 나였다. 내가 처음 하는 일에도 완벽하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무언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했었다.

 

일단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은 '내가 한번 얘기해 봤다가 실수하면 어떡해, 내가 뭔가를 잘 못 이해한 거면 어떡해' 뭐 이런 생각이었었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한번 일이 있은 후 부터 물꼬가 트인 듯이 싫은 말을 줄줄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바로바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니고 여전히 조심스레 며칠 혹은 몇 주의 시간을 가지고 말을 꺼내야 할지, 꺼낸다면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지 등등 이런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한참을 돌려보고 나서 얘기를 꺼내게 된다. 

 

아무리 말해도 말이 안통하는 사람하고는.. 도저히 답이 없다. 이건 내 말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은 누가 어떻게 말을 한다고 해도 절대 들어먹지 않을 인재라서 이런 사람 하곤 대화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그 사람은 자기가 정한 답이 있고 모두가 자기의 말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예시를 빌어 블로그에 직장동료 욕 하기 ㅋㅋ 어차피 그 친구는 비 한국인이라 이 글을 읽을 수 있을 수도 없다. )

 

시작이 힘든 사람 - 본인과 주변인의 인내가 중요

아무리 주변에서 일단 해 봐라 해 봐라 한다고 한 들 이미 불안도가 극에 달한 사람의 경우 그런 말 자체가 나에게 족쇄로 다가온다. 실제로 내가 그랬고 내가 스스로 한 발짝을 내딛기엔 주변인의 인내(나의 경우 남편이 참 많이 참았다. ㅎㅎ)와 나 자신의 인내 또한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그 어떤 곳에서든 비난을 받아서든 안 된다. 

 

 

유기견을 길러본 사람이라면 조금 알 수도 있는 느낌인데 처음 유기견이 집으로 와서 내가 아무리 적응을 시킨다고 똥꼬쇼를 한다 한들 그 개는 내 마음을 알 리 없고 나의 그런 행동들이 도리어 강아지의 불안도를 증폭시킬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필요한 것 이외의 관심은 주지 않고 그 아이가 집을 충분히 탐색하고 안전하다고 스스로 판단 내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분명 그 아이가 집을 편안해하고 나를 주인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처럼 사람에게도 누군가 밥을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던 아니던 분명 스스로 첫 한 발짝을 떼는 날이 온다. 깜깜한 터널이 아닌 조금 긴 터널일 뿐이다. 

 

 

흰 접시 위에 올라와 있는 단면이 보이게 썰린 김밥

 

 

뜬금없이 왜 김밥 사진이 올라가 있냐면.. 이 김밥이 또 나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있던 시절 김밥을 너무 못 말아서 내 맘에 들지 않자 아예 김밥 말기를 포기해 버렸다. 한 번 시도해 보고 내 마음에 차지 않으니(=누구한테 내가 했다고 말하기 창피하니) 그냥 앞으로도 못 할거 같으니 그냥 손을 놔버리자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그냥 김밥을 말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남편하고 같이 김밥을 말아봤는데 김밥을 생전 처음 말아보는 남편이 나보다 더 잘 만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약간 작고 타원형이지만 그런대로 재료가 잘 들어가 있는 김밥이 남편 작품이고 그 옆에 있는 자유분방한 김밥이 내 김밥인데 나보다 김밥을 더 잘 말다니! 하고 자존심 상해했었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인 것이 남편은 천천히 꼼꼼하게 밥알을 한 톨 한 톨 잘 펼친 후 재료를 차분히 놓고, 과욕 부리지 않고 적당히만 넣어서 꾹꾹 잘 눌러 말은 반면에 나는 밥도 대충 깔고 속재료도 와장창 때려 넣고 일단 말면 다 들어가~ 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결과가 이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근, 두부 및 속재료가 꽉 찬 김밥 다섯 개

 

 

평소 같았으면 남편한테 김밥은 앞으로 네가 말아! 하고 나는 그냥 때려치웠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 계속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몇 번 시도해 본 끝에 꽤 괜찮은 김밥을 말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보고 첫 결과물이 좀 창피하더라도 혹은 내가 일을 좀 못하더라도 그냥 철판 깔고 꾸역꾸역 해나가다 보면 익숙해져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내가 꽃을 배우던 시절 '저 친구는 진짜 재능이 없다'라고 생각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 친구가 나보다 더 더 꽃일을 오래 했었다. 그 친구는 그냥 꾸준히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보다 더 꽃일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요즘은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없나?' 뭐 이런 생각은 잘하지 않는다. 일단 내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하나하나 헤쳐나가다 보면 문제 해결력이라는 것이 시나브로 쌓이게 되고 또 그런 힘이 다른 일을 위한 도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보이는 스펙은 아니라서 구직자 입장에서는 불안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분명 나에게 기회가 오는 때는 있다. 무조건 온다. 그리고 그 기회는 내가 '시작'이라는 것을 했을 때에만 주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의 페이스에 맞춰 무조건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토끼이지만 나는 거북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나의 불안한 마음을 받아들여주고 내가 남들보다 좀 느리다는 것을 인정하면 분명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고 나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추천글 🛬
 
시작이 어려운 회피형 성격 바꾸기 | 완벽주의, 우울증 극복 | 한국과 독일사이


잠수 이별에 익숙해지기 | 나에게 너그러워지기 | 한국과 독일사이


순간의 우울,분노,불안을 털어내는 팁


남과 나를 비교하고 싶을 때 마음 다잡기


해외에서 한국인과의 인간관계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