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 ) 함께하는 독일생활/하루하루 독일일상

잠수 이별에 익숙해지기 | 나에게 너그러워지기 | 한국과 독일사이

by nDok 앤독 2024. 4. 12.
반응형

제목이 좀 어그로 같긴 한데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자의던 타의던 생각보다 잠수 이별을 당하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이별들은 시간과 함께 덤덤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잠수 이별

 
독일에 온 첫 해 정말 특이한 한국인 지인을 한 번 겪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티내지 못했을 그런 성향이라고 해야 할지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그동안 한국의 보편적인 도덕성이라고 여겼던 일종의 틀을 무자비하게 깨버리는 그런 성향을 가진 분이었다. 뭐 결론적으로는 본인도 그런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 느꼈는지 그 뒤로 나와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독일에서 처음 당한 '잠수 이별'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번 '잠수 이별'을 당하면서 부끄럽지만 처음에는 실연당한 것 마냥 몇 번 울기도 했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더 좋은 사람이어야 되는데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괜찮은 사람인데 감히 네가 날 싫어해? 그래 너는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 보자!😡 하고 말이다.
 
물론 내 자신에게 애정을 갖는 것은 좋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는 낫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인지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말로만 그저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 어딘가에서는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받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 조금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몇 번의 잠수 이별을 겪고 끊임없이 했던 생각들이 계기가 되었다. 내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는 얻어지는 것도 없으니 당시에는 별 쓸데없는 생각이라 여겼던 것들이 조금씩 모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각을 바꾸고 그것들이 또 조금씩 모여서 내 가치관을 바꾸고, 그로 인해 내가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고 또 끝에는 내가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을까 싶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동의할 수도 있는 얘기인데 나는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자꾸 머릿속에서 굳이 상기를 시켜가며 일명 '이불 킥'을 할 때가 많았다. '그 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or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때 했던 그 말은 그런 의도로 얘기한 것이 아닌데 상대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으면 어떡하지?', '이렇게 말했다면 좀 더 내가 멋져 보였을 텐데' 등등의 주로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회상 내지 후회 말이다.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잠수 이별을 당할 때에도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뭔가 말 실수를 해서 나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거구나, 아 싫다 나 자신.' 혹은 마음속으로 분노하며 '나한테 싫은 게 있어도 그전에 말을 안 한 네 잘못이지 이렇게 잠수 이별하는 거 예의 없는 거 아냐? 이런 사람하고는 나도 굳이 시간, 돈 써가며 인연을 이어갈 생각 없고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이야.' 따위의 생각 말이다. 사실 상대가 나와 일부러 연을 끊은 것인지 아니면 한동안 얘기를 나누지 않다 보니 불쑥 다시 말을 건네기가 어려워 서서히 멀어졌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애써 긍정적인 것만을 보려고 하며 상대가 고의로 잠수를 타진 않았을 것이다 라는 쪽으로 생각 회로를 최대한 돌렸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하고 나 자신을 싫어하기도 혹은 너무 사랑하기도 하니 말이다.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니 나에게 높은 기대를 걸게 되고 작은 실수에도 심하게 나 자신을 꾸짖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너그러워지기 

 
이랬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나의 단점을 잊으려고 했던 과거와는 달리 내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며 이전에는 강하게 쥐었던 고삐를 서서히 놓아주게 되었다. 
 

며칠 전 유투브에서 본 영상이 기억이 난다. 유퀴즈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방송인 지석진, 가수 키, 방송인 유재석이 함께한 자리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방송인 지석진이 가수 키의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었다는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내가 뭔가 말실수를 또 했겠지"라고 한 말이 참 인상 깊게 남았다.
 
내가 나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또 (심지어 모두가 볼 수 있는 티비 방송에서!) 그 부족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에서 이 사람이 그동안 쌓았을 엄청난 인생 내공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내가 나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 같다.
내가 가진 편협한 생각, 잘못된 생각들을 몰래 감추는 것 보다는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고 내 자신의 찌질함에 대해 인정을 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보다 나에게 잠수 이별을 고한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뭘 또 말실수를 해서 나한테 정 떨어졌나 보다'하고 쿨하게 넘길 수 있는 그런 자세 말이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한 마디 더 덧붙인다면 내가 한 실수들에 대해서 마냥 긍정 회로를 돌리며 이게 난데 어쩔거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한 실수에 대해서 인지를 하고 반성은 하되, 어차피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므로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반성은 하지만 그 생각을 질질 끌고 가지는 않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설사 내가 한 말실수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됐다고 해서 내가 가치없는 인간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다.



사람이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데 나도 이유없이 누군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내 무의식이 불러온 어린 시절의 기억이던 열등감이던 뭐던 간에 말이다.
상대방도 나를 이유없이 싫어할 수 있다. 그 사람의 무의식이 불러온 어린 시절이 기억이던 열등감이던 뭐던 간에 말이다.
 
설사 내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고 해도 내 인생은 문제없이 흘러간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개인적인 부정적 감정은 그 사람의 것이고 설사 내가 원인 제공을 했다 한들 내가 그 감정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나는 그냥 '내가 싫은가 보다~'하고 훌훌 털고 치킨이나 뜯으면 된다. 
 

 
 
 
 
 
 


🛫 추천글 🛬

시작이 어려운 회피형 성격 바꾸기 | 완벽주의, 우울증 극복 | 한국과 독일사이


30대의 인간관계는 연애와 비슷하다


해외에서 한국인과의 인간관계란


내가 독일에서 살아가며 겪는 성장


한국에서 먹은 것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 1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