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독일 성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결정한 건 아니고 시청 결혼식 예약을 잡아주신 시어머니께서 그때 아마 이미 결정해두신 듯하다. 원래 이렇게 결혼식이 얼렁뚱땅 진행이 되나 싶다가도 워낙 이런 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디테일도 사실 시어머니와 시고모님께서 결정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편하게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성에서의 결혼식 장소
Wartburg
우리는 Wartburg이라고 하는 곳에서 결혼을 했는데 이곳은 마틴 루터가 성서의 번역을 한 곳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덕분에 스냅을 찍으러 가며 모르는 분들께 많이 축하를 받았다.
우리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이 아닌 성에 있는 호텔 안에 마련된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이라고 하기엔 한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소박해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식’은 아니고 standesamtliche Trauung이라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동사무소에 서류 제출하러 가는 걸 요란하게 하는 느낌? 물론 그 둘은 다르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결혼식 전
진행 과정
우리의 결혼식은 11시에 시작이었고 우리는 이미 10시 20분가량 정도에 미리 도착해 서로 담소도 나누고 먼저 사진도 한번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아래층에서 모두 같이 대기하고 있다가 식이 시작되기 5분 전 즈음에 하객들만 먼저 올라가고 신랑 신부는 0층에서 대기를 한다. 대기가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이리저리 사진도 찍도 춤도 춰가며(?) 나름 그 시간을 재미있게 보냈다.
이제 우리의 식을 담당하시는 분 께서 내려와 본인의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시고 사인은 어디에 어떻게 하는지 미리 알려주신다. 그리고 문 앞에서도 어떻게 있으면 되는지, 문턱은 조심해서 넘어야 하고 등등 이런저런 팁도 같이 주셨다.
그러면서 감정적이게 될 수가 있으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하시면 최대한 듣지 말고 지난 휴가 등등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도록 해보라는 조언을 주셨는데, 우리는 이전에 이미 작성해서 보낸 Absprache를 약간 웃기게 적어 보냈던 지라 웃다가 끝날 거 같은데 괜찮겠지 라는 생각에 주의 깊게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식이 시작되고 우리가 입장곡으로 고른 love me tender 가 조용히 깔리고 입장하는 순간부터 약간 묘하게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긴장되나 보다 하고 조용히 입장을 했는데 의자에 앉기 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그만 풀썩 앉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당황했지만 덕분에 웃음은 드렸다.
이윽고 주례가 이어졌고 이런저런 좋은 얘기를 해주셨다. (무슨얘기를 했는지는 아무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동적인 얘기가 나오는 순간도 아니었는데 별안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내가 왜 울지? 싶을 정도로 정말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남편이 미리 휴지를 챙겨놨기에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주례하시는데 죄송스러울 정도로 눈물이 계속 흘렀다. 나중에 먼저 결혼을 한 지인은 이런저런 본인의 히스토리와 고생한 내용이 떠올라서 울컥했다고 하는데 정말 맹세코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내 눈물은 나의 무의식의 영역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눈물의 주례가 끝나고 대망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와 남편은 서류 앞에 서서 서로 먼저 하라고 팔을 툭툭 쳤는데( 서명을 나중에 하는 사람은 이전 사람의 서명 밑에 본인 서명을 하면 되므로 편하다. ) 안타깝게도 내가 서류에 조금 더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먼저 사인을 하게 되었다. 역시나 어디다 뭘 써야 할지 헤매자 담당 베암틴께서 도와주셨다.
이것도 원래 독일의 전통인 것인지는 모르나 식은 마지막에 퇴장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시댁 식구들이 한 명씩 나와 꽃을 주며 포옹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때 다시 눈물 콸콸.. 눈물 때문인지는 몰라도 솔직히 음악이고 뭐고 아무 생각 안 들었다. 고로 의미 있는 음악은 무조건 앞쪽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그다음 역시 손님 먼저 퇴장을 하고 우리는 위에 조금 머물렀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바로 이런 장면 연출을 위해!
여기서는 꽃잎을 뿌리기도 하고 이렇게 비눗방울을 불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버려지는 꽃잎보다는 비눗방울이 환경에 더 좋은 것 같아 더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내 부케는 캐스케이드 형식이었는데 키가 작은 나에게도(158cm) 꽤 어울리는 부케였다. 참고로 부케의 색상은 신부의 드레스 색상을 따라가는데 내 드레스의 장식이 연한 파란색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파란 부케가 낙점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마지막에 단체별 사진을 찍는데 부모님과 함께, 친척들 중 여자들만, 또 뭐 있었는데 잊어버렸.. 아무튼 이런 식으로 몇 번 더 단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 대기실
Kaminzimmer
원래 있는 과정인지는 모르나 Kaminzimmer라고 불리는 이 공간에서 간단히 건배사를 나눈 뒤 하객들에게 작은 핑거푸드류를 제공하고 우리는 그동안에 한 시간의 짧은 스냅을 찍으러 후다닥 나갔다 들어왔다. 생각보다 날이 꽤 추웠지만 성 주변의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다 보니 춥다는 생각은 금세 사라졌던 것 같다.
결혼식장에서 너무나도 먹고 싶었지만 빨간색은 위험하다며 먹지 못했던 저 토마토소스를 바른 빵이 식탁에 놓인 순간 남은 음식을 싸오신 어머님께 너무나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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